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은 유별나다. 매운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은 기본이고, 거의 모든 음식에 고추장 혹은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고추 소비량은 1인당 연간 4kg로 멕시코와 태국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매운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매운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매운 음식을 적당히 즐기면 심장질환 위험이 감소하고 소화기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은 진통제 등 각종 의약품의 핵심 성분으로도 사용된다. 2022년 미국 유니버시티 호스피탈스 클리브랜드 메디컬센터(university hospitals cleveland medical center) 연구진은 매운 음식을 일주일에 여섯 번 먹는 사람은 매운 음식을 일주일에 한 번 미만으로 먹는 사람보다 조기 사망 위험이 적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매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 내용도 다수 발표됐다. 2014년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김헌식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칼시스제노시스(carcinogenesis)'를 통해, 고용량의 캡사이신이 체내로 들어오면 암세포에 대한 방어력을 떨어트리고 위암 등 각종 암 발병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연구진이 50μmol(마이크로몰)의 고용량 캡사이신을 항암 면역세포에 투여한 결과, 위암 면역세포의 방어력은 33%, 혈액암 면역세포의 방어력은 5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매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거나 매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고혈압 위험이 증가한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한 국내 연구진이 노년기에 매운 음식을 즐겨 먹으면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노년기에 매운 음식 너무 즐기면 인지기능 저하돼지난 26일 한림대의대 동탄성심병원 김지욱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를 통해, 노년층이 매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기억력 등 인지기능이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매운 음식이 사람의 뇌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다수 있지만, 대부분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매운 음식 섭취와 인지기능 저하 사이의 유의미한 연관성을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는 65~90세 국내 노년층 196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참가자 중 113명은 인지기능에 문제가 없었으며, 나머지 83명은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았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1년 동안 주 1회 이상 먹었던 음식의 매운 강도를 조사했다. 이후, 참가자들을 매운 강도에 따라 매운맛 없음(93명), 낮은 매운맛(58명), 높은 매운맛(45명) 등 세 그룹으로 나눠 매운 음식 섭취와 '삽화기억' 감퇴 사이의 연관성을 평가했다. 삽화기억이란 개인의 경험 혹은 체험과 관련된 기억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지난 생일 파티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식이다. 삽화기억 감퇴는 초기 알츠하이머병 주요 판단 기준 중 하나다. 평가 결과, 높은 매운맛에 속한 노년층에게서 알츠하이머병 관련 기억 손상 소견이 관찰됐다. 반면, 매운맛 없음 혹은 낮은 매운맛에 속한 노년층에게서는 기억 손상 소견이 없었다. 이외에도 연구진은 신체활동이 부족하면서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노년층에게서 기억 손상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점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는 과도한 캡사이신 섭취가 신경독성을 유발한다는 동물실험이나, 매운 고추 섭취량이 많을수록 인지기능이 낮아진다는 해외 연구와 맥락이 일치한다"라고 설명했다. 2019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 australia) 연구진이 고용량의 캡사이신 장기 섭취가 노년층의 인지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를 살펴보면, 고추 등 매운 음식을 자주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2배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구진은 "다만, 꾸준한 운동 등 신체활동이 활발하면 매운 음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독성으로부터 뇌를 보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연구를 이끈 김지욱 교수는 "순하고 적당한 매운맛은 인지기능 저하와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라고 덧붙였다.